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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실천한 휴머니즘. 유진 스미드
사진이란 기껏해야 하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이루는 전체적인 조화가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여
지각으로 매개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어떤 사진들은 그것들이 사색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이나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소리를 듣게 만들고, 이성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때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아내도록 인도해 갈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생활방식이 그들에게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와 연민을 느낄 것이다.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은 잘 구성하기만 하면 그 소리를 들려줄 수가 있다.
W. Eugene Smith, 미국, 1918∼1978 )
「라이프」지를 기점으로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잡지들 덕에 포토 저널리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즉 문자언어에 의한 '읽는다'는 행위가 영상언어와 결합되어 '보는 것'을 추가시켜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데 큰 몫을 한 셈이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뉴스위크」지의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유진 스미드는 사진의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보도사진만을 고집한 사진가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스미드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라이프」지는 스미드에게 큰 도약의 발판이 된 셈이다.
1942년 그는 「라이프」지와의 일을 그만두고는 「퍼레이드Parade」라는 주간지의 핵심적인 사진기자가 되었는데, 이 잡지는 그의 기록 사진 덕에 크게 각광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미 스미드는 당대의 가장 훌륭한 보도사진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23살에 불과했다. 극적이고 감동적인 힘에 넘치는 그의 스타일은 전전(前戰)의 혼란한 시기의 신문의 요구에 완전히 부응하는 것이었다.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지프 데이비스(Ziff Davis)가 발행하는 「플라잉Flying」지의 특파원으로 일했다.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찾아낸 생명 존중 정신
1943년 말에 USS 벙커힐(Bunker Hill)호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해병대의 어벤저(Avenger) 폭격기에 탑승하여 다섯 달 동안에 걸쳐 16회의 출격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는 많은 전투 장면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가 가지고 온 사진들은 태평양에서의 공방전 현장에 직접 있었던 유일한 사진 기자에 의해 포착된 가장 충격적인 기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44년 5월 USS 벙커힐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온 그는 다시 「라이프」지의 기자가 되어 6월에 다시 태평양으로 떠난다. 전투가 한창 치열하던 그 당시에도 여전히 그는 사이판, 괌, 레이테, 유황도, 오끼나와 전투에서 해병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유진 스미드는 1942년부터 그가 취재한 열세 번째의 작전인 오끼나와 전투의 전선을 취재하다가 포탄에 부상을 당한다.
1945년까지 3년여에 걸쳐 태평양 전쟁의 종군 사진가로도 활약을 하여 아래의 <유일한 생존자>를 촬영할 수 있었다. 1944년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전투가 한층 더 치열해져가고 있을때 일본군은 가장 중요한 거점인 사이판의 천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동굴들을 요새지로 무장하여 생활하였는데 이 사이판이 1944년 7월 7일에 미군의 맹공 앞에 완전히 함락되었다.
유일한생존자
<유일한 생존자>는 이때 촬영된 것으로서 미군의 화염병사기가 내뿜은 화염으로 인하여 초토화된 사이판의 한 동굴에서 수백명의 일본군 병사들과 민간인들의 시체들 가운데 유일하게 숨결이 붙어있는 작은 생명체가 미군 병사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어 구출된 순간이었다.
유진 스미드의 <유일한 생존자>는 제2차세계대전을 찍은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사진이다. 비록 전쟁이 서로를 살상하는 비인간적인 행위지만 그 속에서도 어린 생명을 소중히하는 군인의 모습은 역설적이면서도 또한 진한 인간애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동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를 따뜻하게 품에 안고 있는 병사의 모습은 천사와도 같이 숭고하며, 병사는 어린 생명을 구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라도 올리는 듯 숙연한 자세로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는 인간애로 충만한 휴먼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은 유진 스미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그로 하여금 순진한 이상주의를 버리고 추호의 동요도 없게끔 단단히 다듬어진 휴머니스트의 입장을 취하도록 만들었다. 마년에 이르기 까지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의 자세는 인간은 분명 권리를 갖고 있지만, 또한 책임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전쟁은 그의 예술을 완성시켜 성숙한 표현력이 한껏 발휘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후로 그는 온후한 스타일을 택하게 되는데, 그는 인간조건의 개선에 기여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나가 부러워 하던 「라이프」지를 편집자와의 마찰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로 사진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스미드의 성격상 본래 개성이 워낙 강하고 주장이 너무도 뚜렷했기 때문에 편집자와의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유진 스미드 - 사진의 성자
그가「라이프」지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itzer> 라는 작품 때문이었는데 이유인즉 스미드가 슈바이처 박사를 찍을 때의 의도는 대개 성인으로 바라보는 슈바이처 박사라는 입장에서 촬영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한 보통 사람으로 표현하되 다만 그의 생명경외 정신,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인데 편집자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선별하여 트리밍에서 레이아웃까지 고쳐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1955년에 사진 원고 은행격인「매그넘(Magnum)」에 가담하여 작가 의지대로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활동을 벌이다 워낙 한곳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1959년에 매그넘도 탈퇴하게 된다.
스미드의 사진세계에 있어 가장 주된 요지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처럼 "사랑"이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자신의 살길을 위해 잔인함과 폭력성을 겸비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이 그의 사진에는 주조음으로 깔려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49년의 <시골의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1951년의 <스페인 마을>, <조산부>,<산파> 1952년의 <촬영중인 찰리 채플린>, 1954년의 <자비로운 슈바이처>, 1972년의 <미나마따병>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이중 1951년 6월 4일자 라이프지에 실린 <스페인 마을>은 카르멘과 투우, 정열적인 춤으로 알려져있는 스페인을 촬영한 것으로 파시스트 프랑코의 압정 밑에서 찌든 민중들의 진정한 생활과 감정을 잘 표현해준 작품으로서 이 작품으로 인하여 U.S 카메라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인간가족 전에서도 그의 사진은 높이 평가받았는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스미스의 <낙원 뜰에 이르는 길 A Walk to Paradise Garden>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아이들을 촬영한 작품인데 이는 두 아이가 숲을 빠져나가 미래의 길로 향한다는 느낌을 주는 미래지향적인 사진을 보여주었다.
저널리즘의 신화 - 유진 스미드
1971년에 들어서 유진 스미드는 뉴욕에서 이제까지 자신의 사진활동을 마무리짓는 회고전을 열고 일본계 미국인 미쇼코와 결혼하여, 일본에서도 회고전을 개최하였다. 이후 3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미나마따(Minamata)병을 심층취재하였다. 《미나마따(Minamata)》 일본 남부의 미나마타시와 시라누이 해의 연도에 있는 어촌 사람들의 문제를 다룬 사진으로서 화학공장에서 배출된 메틸 수은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희생자들의 죽음, 기형아 출생, 신경장애 등의 모습을 영상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그중 <목욕하는 도모꼬>로 주인공인 도모꼬는 태어나면서 미나마따병에 걸려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식물인간으로 살면서 어머니에 품에 안기어 목욕을 하는 모습을 완벽한 영상미로 보여주고 있다.
Tomoko Uemura in Her Bath Minamata (1972)
유진 스미드의 《미나마따(Minamata)》사진집을 본 미국의 평론가인 수잔 손탁은 "주민 대부분이 수은 중독으로 신체 장애를 일으켜 서서히 죽어 가는 모습을 기록한 유진 스미스의 이 사진은 우리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고뇌를 기록했으며, 어머니 무릅위에서 온몸을 비틀며 빈사상태에 있는 딸은 현대 각본연출법(Drama trugy)의 참된 주제로서 탐구된 페스트의 희생자가 넘치는 세계를 찍은 한 장의 피에타(Pieta :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시체를 무릎에 안고 있는 그림, 상)이다."라고 말하였다.
그의 사진 표현방식은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낮은 밑바닥 세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 화조도 어둡고 무겁게 느껴지도록 구성하여 더욱더 그들의 아픔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스미드는 이부분에서 사회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함이 많은데 이보다 나아가 인간의 사랑, 행복, 평화를 확신하며 미래지향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표현했다는데 더욱 의의가 있는 것이다. 시련의 과정속에서 헤메이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보다는 좀더 나은 곳으로의 도약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또 현실의 낮은 삶의 공간에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미래지향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무능력하게 자기 삶을 포기하고 회피하거나 안주하기 보다는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그들과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스미드도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야 객관적 다큐멘터리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당사자의 입장의 상황을 기록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이 되고자 취재할 대상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수집하여 촬영에 임하는 열성을 보였다.
The Walk to Paradise Garden<낙원 뜰로 이르는 길> , New York 1946
스미드 자신이 평가하기를 자신은 이상주의자라고 말한다. 이상주의자···도달할 수 없는 공상과는 달리 현실 속에 뿌리를 두고 고난과 시련을 부딪쳐서 꺾이지 않고 나아갈 길을 나아가는 것이 이상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다. 그가 꿈꾸고 바라보는 이상을 머리속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 한복판에서 구체적이고 엄연한 사실로 실현시키기 위해 뛰어드는 실천적인 이상주의자가 바로 유진 스미드이다. 강한 개성을 가진 성격의 소유자였던 유진 스미드의 사진세계도 이러한 몸부림을 영상으로 정착시킬 때는 자기 내면적 표현을 위주로 중시하기 보다 "사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위에 객관적인 입장으로 다큐멘트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던 사진가이다.
만일 사진 - 저널리즘의 신화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유진 스미드는 정녕 그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무한한 용기와 굽힘없는 신념을 지닌 영웅이고 또 인간에 대한 탐구에 있어 추호의 머뭇거림도 없었던 영웅이다. 그는 자신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의 익명의 헌신과 용기에 대한 예찬자였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결코 모순되지 않는 도덕적 분노를 품고서 자기의 사진을 통해 전쟁과 비참과 불의를 고발한 작가인 것이이다. 유진 스미드의 유명한 기록사진들은 단순한 증언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준엄한 논고이다.
출처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http://windshoes.new21.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