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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암흑 시대의 증언자 - 도로시아 랭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첫째, 주제를 함부로 변경시킨다든가 또는 적당히 손질해서는 안 되고 둘째, 대상은 환경의 일부로서 거기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같이 취급해야 하며 셋째, 대상을 과거와 현재라는 흐름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 도로시아 랭

도로시아 랭 ( Dorothea Lange, 미국, 1895∼1965 )

도로시아 랭

1930년대 세계가 불황에 휘말려 들던 초반까지도 사람들은 그것이 대공황이란 어마어마한 경제적 충격으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 역사상 사상 초유의 대공황이란 것이 서서히 명확해질 무렵 많은 예술가들은 이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멕시코의 화가들은 벽화 운동을 시작으로 화가들은 작품을 통해 계몽운동에 나섰고, 사진작가들은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할리우드로부터 독립적인 일단의 영화작가들은 할리우드의 보랏빛 꿈과 희망을 박차고 나와 현실 문제와 그 현실 세계에 뿌리박고 사는 이들을 배우삼아 현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존 그리어슨은, 영화가 "사실을 기록하고 해석함으로써 민중을 움직이게 하는 새 수단이며, 그것은 다시 경험을 쌓아서 우리들 시민생활의 새로운 세계를 상상 속에 그릴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극(劇)을, 우리들의 문제에서 시(詩)를 지어내는 능력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런 타입의 영화를 기록영화(記錄映畵, 다큐멘터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런 기록영화 혹은 사진을 예술의 범주에 넣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늘상 있어왔고, 다큐멘터리의 초기에도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도로시아 랭과 같은 사진 작가들은 기록 사진을 촬영함으로써 그들이 예술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어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이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뼈아픈 현실일지라도 그것을 직시함으로써 우리들은 대상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미국의 여류사진가인 도로시아 랭은 농업안정국(FSA)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진가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35∼1942까지 7년에 걸쳐 FSA운동에 가담하면서 공황기의 미국을 특히 이민 노동자나 소작인 등을 중심으로 한 다큐멘타리 사진을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1930년대 세계공황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때 <f.64>그룹의 랭은 수년전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상사진 중심의 스튜디오를 열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공황기간 동안 그는 집과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무료급식을 타기 위해 줄 서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것을 찍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대공황이 많은 사람들의 가정과 생활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가슴 아파했고, 이런 당시 실업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아 1934년에 개인전을 열었다. 이 때의 사진전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이 사진전을 통해 농업안정국(FSA) 운동에 가담하는 계기가 된다.

FSA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935년에 가난으로 곤경에 처한 농민들을 지원하고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농업안정 보좌관으로 당시 콜롬비아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던 렉스포드 터그웰에게 맡겨졌다. 터그엘은 농업안정국 산하에 사진단을 조직하여 미국 농민의 생활상을 심도있게 보도할 사진촬영 계획을 세워고 이를 지휘할 임무를 그의 제자였던 로이 스트라이커(Roy E. Stryker)에게 주었다.

Migratory Cotton Picker,

Migratory Cotton Picker, 1940

스트라이커의 지휘아래 운영된 FSA의 사진단은 워커 에반스, 벤샨, 칼 마이단스, 러셀 리등과 함께 도로시아 랭 또한 1935년에 FSA에 가담하여 당시 농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즉 FSA는 경제공황과 더불어 미국 중서부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사정을 시각언어인 사진으로 엮어서 호소함으로써 범국민적인 공동대책을 마련하려는 정부의 행정적인 시책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이 사진운동에 참여한 여러 사진가들은 제각기 다른 주제의 작업을 나누어 맡았는데 도로시아 랭의 역할은 '일거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사진촬영에 들어갔다.

그녀가 FSA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으로는 1936년에 찍은 <이주 노동자의 어머니 Magrant Mother> 가 있다. 이 사진은 캘리포니아 이주 농민들의 생활과 그 상태를 기록한 사진으로 이주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이주하며 생활하는 불쌍한 어머니가 텐트 속에서 어린애에 둘러싸인 모습을 통하여 당시의 미국 노동자의 삶과 얼굴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사진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의 기록과 정서적 감동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책적인 이유로 시작된 다큐멘터리 기록적 사진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삶의 진실을 느낄 수 있도록 감동적인 해설서였기 때문이다.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보여준 랭의 사진세계는 한 시대의 사건들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았기에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사진을 보면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게해준다. 도로시아 랭은 우리에게 농업안정국(FSA)으로 시작하여 농업안정국(FSA)으로 끝났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그녀의 사진의 질적인 수준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시기가 가장 전성기였고 이후의 사진작업에 있어서도 FSA의 사진 촬영방식과 특별한 차이없이 매우 유사하게 나아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로시아 랭을 이야기할 때 FSA 중심으로 설명되어지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그만큼 도로시아 랭은 FSA에서 활약했던 가장 중심인물 중 대표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로시아 랭의 사진사적 위치는 어떠한가?

1870년대부터 사회개혁을 사진매체를 이용하기 시작한 자곱 리스(Jacob Riis)와 루이스 하인(Lewis W. Hine)의 연장선인 도로시아 랭은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실업과 가난. 그 중에서도 당시 신세계를 찾아서 몰려들었던 이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세상에 드러내어 정부 당국이나 사회가 서둘러 그들을 위한 대책을 세우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Ditched, Stalled, and Stranded, San Joaquin Valley, California, 1935

Ditched, Stalled, and Stranded, San Joaquin Valley, California, 1935

자곱 리스의 경우는 그늘 속에 가려진 사건을 세상에 폭로하고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경향이 강했으며 사회학자였던 루이스 하인의 경우는 어린 노동자들에 대한 학대에 관한 관심으로 사회적 윤리성을 강조한 경향이 짙다. 도로디어 랭의 경우는 이보다 한 단계 발전하여 이주민들이 당하고 있는 육체적 가난과 고통 뿐만 아니라 정신, 영혼의 고뇌와 고통속에서 헤메고 있는 그들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도로시아 랭은 자곱 리스나 루이스 하인과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 되기도 하지만 또한 FSA에서 동료였던 사진가 중 한사람인 워커 에반스와 많이 비교된다. 워커 에반스가 FSA 활동당시 그의 사진특징은 인물중심이라기 보다는 생활환경 중심으로서 전경적 관점의 사진을 대다수 촬영하였다. 따라서 공간적인 상황 속에서 누추한 빈민들을 파악하고자 하였기에 인물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오히려 배경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Migrant Mother; Nipomo, California, 1936

Migrant Mother; Nipomo, California, 1936

그러나 도로시아 랭의 경우는 그들의 생활공간에 큰 역점을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생활공간, 배경 등은 과감히 생략시키고 인물중심으로 사진을 촬영하였는데 그들의 얼굴에 그 모든 상황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였다. 따라서 클로즈업 수법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특히 클로즈업할 때 그들의 눈빛이 카메라로 향하도록 하여 사진의 모델이 되는 사람과 후에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마주치게 촬영하여 더욱 깊은 감동으로 나아가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녀의 사진속에 등장했던 개개인의 개성으로도 한 시대를 충분히 상징하기에 충분한 사진들을 촬영하였다.

도로시아 랭은 사람들의 삶과 느낌을 표출하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독특한 능력의 소유자로써 새로운 다큐멘타리의 길을 펼쳐놓았다.

출처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http://windshoes.new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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